조선왕조는 건국이래 사대 교린 이라는 외교적 기조로서 200여년 이상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은 중원을 차지한 명나라에 대해서만 사대의 예로서 대하고 주변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선린 우호 정책으로 일관한 것 정책을 말한다. 그러나 같은 시기 일본은 각기 배타적인 무장력을 갖춘 봉건제후(大名)들이 서로 쟁탈전을 벌리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라는 희대의 영웅이 나와서 일본천하를 통일하고 여세를 몰아 조선을 거쳐 명나라까지를 정복하려는 야욕을 갖기에 이르렀다. 이때까지 평화분위  

기에 젖어있던 조선왕조는 일시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조선이 망하면 위험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명나라는 조선을 구원하기 위한 원군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임진 조국전쟁은 동양 삼국의 정예가 격돌하는 전투마당이었다. 그리고 전술이라는 측면에서 고도의 발전을 이루는 계기로 되었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민족무예 24반이 정조 때까지 모아지고 무예도보통지로 정리가 되었지만, 한.일 병탄을 거치며 서구와 일제의 침략. 그리고 신식무기의 등장은 조선에 있어 무예의 근간을 흔들어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제의 침략에 의한 철저한 탄압을 일제가 마음대로 우리의 무예를 훼손하고 없애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1970년 임동규 선생은 무예도보통지를 접하시고 복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리던 중 남민전 사건으로 감옥에 투옥되었으나, 이에 굴하지 않고 1평 남짓한 감옥 안에서 빗자루도사라는 별명을 얻어 가시면서까지 24반 무예를 복원해 내었다.1988년 임동규 선생은 석방됨과 동시에 지금의 광주시 광산구 지산동에 '민족도장 경당'이라는 도장을 만들어 이후 지금껏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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